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앙코르와트 일출투어를 가기로 한 3일차 아침이 되었다.
4시에 알람을 설정해놓고 새벽녘의 어스름한 푸른 빛의 세상을 기대했지만, 정말 칠흑같은 아침이었다. 눈곱을 떼고 엊그제 사서 잘 빨아놓은 코끼리 바지를 엄마와 맞춰 입고 로이리와 약속한 호텔 로비로 나갔다. 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호텔 로비는 모두 투어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차있었다. 부지런한 로이리는 우리보다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프라이빗 투어가 가격이 얼마나 더 비싼지는 모르겠지만 캄보디아 여행 동안 엄마와 불편하지 않게 다니면서, 우리 컨디션을 계속 고려해주시고 움직일 수 있었던 해당 투어가 정말 만족스러웠다. 차라리 다른 부분에서 지출을 줄이고 투어를 안락하게 다니는 것은 우리 여행의 스타일이었으므로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은 고려해보았으면 좋겠다.
각설하고, 앙코르와트의 일출 포인트로 걸어가는 길이 정말 어두웠다. 동서양인 할 거 없이 모두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한발자국씩 옮겼다. 앙코르와트의 진입로에 있는 호수가 일출 포인트로 보였다. 머리 위에는 달이 떠있었다.
이미 도착한 사람들은 물가 언저리에서 어두컴컴한 건물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날에도 일몰 투어를 쉽게 포기한 이유가 날이 흐리기 때문이었는데, 우기인 캄보디아는 하루에도 몇번씩 비가 내렸다. 과연 일출을 볼 수 있을 것인가. 물가에서 엥엥 거리는 모기를 쫓으며 모두 카메라만 들고 있었는데, 점점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하더니 일몰에 오렌지빛으로 물드는 하늘처럼 일출 장관이 시작되었다.
내 생애 자기주도적으로 처음 보는 일출이었다. 이렇게 어두운 하늘에서 해가 지는 건지 뜨는 건지 알 수 없게 강렬한 붉은 빛은 정말 아름다웠다. 국어 시간에 공부했던 해돋이 장관을 보러간 의유당 김씨의 동명일기 속 해돋이 찬사가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의유당 김씨도 나와같은 마음이었는지
일출(日出)을 못 볼까 노심초사(勞心焦思)하여 새도록 자지 못하고 가끔 영재를 불러
“사공(沙工)더러 물어라.” 하니
“내일은 일출(日出)을 쾌(快)히 보시리라 한다.”하되 마음에 미덥지 아니하여 초조(焦燥)하더니
라는 대목이 쓰여있어서 웃음이 났다. 국어과 감성은 답이 없다.
나의 모든 일출 관람 감상은 타인의 감상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급히 눈을 들어 보니, 물 밑 홍운(紅雲)을 헤치고 큰 실오라기 같은 줄이 붉기가 더욱 기이(奇異)하며, 기운이 진홍(眞紅) 같은 것이 차차 나와 손바닥 넓이 같은 것이 그믐밤에 보는 숯불 빛 같더라. 차차 나오더니, 그 위로 작은 회오리밤 같은 것이 붉기가 호박(琥珀) 구슬 같고, 맑고 통랑(通朗)하기는 호박도곤 더 곱더라.
그 붉은 위로 흘흘 움직여 도는데, 처음 났던 붉은 기운이 백지(白紙) 반 장(半張) 넓이만치 반듯이 비치며, 밤 같던 기운이 해 되어 차차 커 가며, 큰 쟁반만 하여 불긋불긋 번듯번듯 뛰놀며, 적색(赤色)이 온 바다에 끼치며, 먼저 붉은 기운이 차차 가시며, 해 흔들며 뛰놀기 더욱 자주 하며, 항 같고 독 같은 것이 좌우(左右)로 뛰놀며, 황홀(恍惚)히 번득여 양목(兩目)이 어지러우며, 붉은 기운이 명랑(明朗)하여 첫 홍색을 헤치고, 천중(天中)에 쟁반 같은 것이 수레바퀴 같아 물속으로부터 치밀어 받치듯이 올라붙으며, 항․독 같은 기운이 스러지고, 처음 붉어 겉을 비추던 것은 모여 소 혀처럼 드리워져 물속에 풍덩 빠지는 듯싶더라. 일색(日色)이 조요(照耀)하며 물결의 붉은 기운이 차차 가시며, 일광(日光)이 청랑(淸朗)하니, 만고천하(萬古天下)에 그런 장관은 대두(對頭)할 데 없을 듯하더라.
짐작에 처음 백지(白紙) 반 장(半張)만치 붉은 기운은 그 속에서 해 장차 나려고 어리어 그리 붉고, 그 회오리밤 같은 것은 진짓 일색을 뽐아 내니 어린 기운이 차차 가시며, 독 같고 항 같은 것은 일색이 몹시 고운 고(故)로, 보는 사람의 안력(眼力)이 황홀(恍惚)하여 도무지 헛기운인 듯싶더라.
-의유당관북유람일기 중
이어서 앙코르와트 내부로 들어가 관람을 시작하였다. 일출의 여운인지 그냥 불면의 밤 때문인지 로이리의 설명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부에 가득하던 벽의 조각들과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뒤섞여 온통 정신이 없었는데 벽화의 내용 중 기억나는 것이 있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나쁜 일을 하거나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던 인식 속에 그려진 형벌의 내용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이 곳의 그림을 보기 무서워서 2층으로 직행한다고 하는 로이리의 설명이 더 귀여웠다.
우리나라로 치면 절에 들어가기 전 사천왕의 얼굴을 보고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는지 두려워하고 땀을 비질 흘리는 그런 모습인 걸까? 왜 착한 사람들은 더 잘 두려워할까? 더 나쁜 일을 한 사람들도 뻔뻔하게 살아가는데, 작은 잘못도 끙끙거리는 선함이 가끔 화가난다. 그리고 이런 벽화도 그림도, 교훈 섞인 작은 이야기 조차도 그렇게 작은 잘못에도 전전긍긍하게 하는 사람들만 뒤흔드는 것 같아 속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코스인 2층으로 올라가는 일정만 남았다. 로이리는 아래에서 기다리고 엄마와 나는 또 무서운 계단을 벌벌 거리며 올라갔는데 ㅠㅠ 정말 무서웠다.
올라올 때도 내려갈 때도 엉덩이를 쭈욱 빼고 다니는 쫄보이다. 예전에는 이 돌계단으로만 오르내렸다고 한다. 떨어지면 뚝배기가 깨지는거다. 지금은 나무 계단인데도 무서운데 관광객은 참 강하다. 내려올 때는 정말 90도로 보이는 굴러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앙코르와트 투어를 마치고 친절한 첫 숙소를 떠나 우리는 두번째 럭셔리 호캉스를 향해 떠납니다!
내가 벌어서 다녀온 내돈내산 여행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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